데날리-맥킨리 20,320피트로의 여행 8. (데날리원정기)

2002.12.18 12:58

박성민 조회 수:2087 추천:7





크레바스


전일의 대단 했던 화이트아웃을 빠져 나온 후 다음날도 화이트아웃상태와 계속된 안개와 눈
속이었다.
camp지는 각국의 원정대로 북적 거리고 위험을 아는지 모두들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우리는 날씨를 기회로 하루의 운행을
쉬기로 하고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주변 정리를 했다.
먼저에서 말한 대로 캠프지의 오른편은 (올라가는 쪽에서 보면 왼편) 협곡의 암벽
지대이며 크레바스 지역이다.
표지기로 길을 유도 해 놓고 있어서 이곳 크레바스가 흰봉투를 버릴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침에 국현형이
다녀 오시더니 볼일을 볼려면 삽을 들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피켈도 함께...
멀리로 다른 외국인이 그 근처로 가는게 보여 남의
볼일 보는걸 눈여겨 보는게 이상 하지만 어쩌나 하고 봐두고 삽 한자루와 피켈을 들고 생리 현상을 해결하러 크레바스 쪽으로
가봤다.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는 앞쪽에서 내려다 보니 이곳의 크레바스속은 온통 흰봉투 투성이다. 물론 개중에 터진 것도
보이고...


피켈을 꽂아 확보를 한상태에서 볼일을 보고 눈과 함께 삽으로 퍼서 던져 버리는 내 행동이 우습지만
안그래도 많은 등반대가 모두가 생리현상을 camp근처에서 한다면 이곳은 온통 지뢰밭이 될 것이다.





camp1에서 바라본 매킨리 전경 설명
가운데 우측이
매킨리의 정상 이다.그 바로 아래의 벽 및 평평해 보이는 곳이 camp4지대 이고 이곳의 전면벽을 오른뒤 릿지를 통해 가운데 봉밑의 안부가
camp5이다. 이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안부의 뒤에서 데날리 패스라는 사면을 따라 정상 능선으로 진입 한다.



매킨리 국립공원 레인져는 등반대와 같이 행동을 하며 오물투기나 문제가 있는 등반대에게 경고 또는 하산
조치를 내릴 정도로 자연보호 활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방지책을 데날리 국립 공원은 마련해두고 있다.(우리나라 한 등반대도 레인져 대장에게 하산
조치를 당했으나 문제가 잘해결 되어 등반을 성공하고 돌아 갔음)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지대라 미생물조차 없어 원만한 음식조차도 상하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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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color=blue>모터 사이클힐을 올라 서서본 cmp3의 모습과 전면의 좌측의 뽀족한 봉우리가 매킨리의 아름다운 포레이커봉이다. 그 오른 쪽은
카힐트나 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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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를
끌며..


하루의 휴식이 지난 뒤 예정을 알기나 한 듯이 다음날 날이 개었다. 날이 개어서 우리는 다시금
camp를 정리하고 드디어 abc인 camp4 속칭 매킨리씨티라고 불리우는 곳에 입성할 차비를 갖추었다.


데포를 하러 간날 보다는 짐의 무게가 적지 않았다. 많은 팀들이 이곳에 썰매를 두고 가기도 했고
더러는 끌고 가기도 했지만 우리의 판단으로는 썰매를 끌고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썰매를 다시 끌면서 모터사이클힐로
올라갔다.



한번쯤 오른 곳은 금방 적응이 되는지 한시간 반이나 걸렸던 언덕이 짐이 더 많음에도 시간은 절약되었고
모터사이클힐의 사면 지대를 돌아갈 즈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 분이세요.!!


오오!! 얼마만에 듣는 한국 말인가. 며칠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 빼고는 보이는 사람 모두에게 영어로 정보를 물어 보니 이또한 심리적 고소가 아닐 수 없었다.(하지만 탈키트나의 민박집 주인은
그때 까지 만난 동양인 등반대중 우리가 제일 영어를 잘 한다고 했음) 반갑게 악수를 하니 원주클라이머스팀이었다.우리 팀의 선배님을 통해 우리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알고 있는 팀 중의 하나였고 등반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축하를 아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팀과 아쉬운 길에서의
해후를 뒤로 하고 얼마 안가서 다시 부경대 산악부를 만났다. 이 팀도 역시 등반에 성공하고 돌아 가는 팀이었다.
우리가 올라 온 삼일간의
좋은 날씨를 틈타서 등정에 성공하고 내려 가는 것이다. 모습들은 처절하지만 만면에 환한 미소와 행복감은 보는 우리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등정을 시도할 무렵에 어제 처럼의 끔찍한 날씨가 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마저
들었다.







윈디코너
정상에서.


한국대를 보내고 윈디코너로 가는 평원길에 다시 올라 서서 걸음을 옮기면서 지난번처럼 고소가 오면
어쩌나 했으나 다행히 윈디코너 정상에 오를 때 까지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신기 하게도 별다른 두통 증상이 없었다. 약간의
거북감만들을뿐...



.






윈디코너를
지나면서.


윈디코너를 돌아 가니 예상 한데로 사면을 트레버스 하는 길 이었다. 이곳의 사면은 바로 모퉁이를
돌자마자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약간 조심 해야 될 것 같고 우측은 크레바스 지대였다.만약에 이곳에서 바람을 맞게 된다면 말그대로 피할곳이 없기
때문에 정말 대책이 안설 것 같았다.








camp4로 들어 서기전.


이 사면을 두어 시간 횡단하니 저 멀리 camp4의 텐트지 들이 보였다. 하지만 지난번 데포때와 마찬
가지로 가도 가도 도착은 안되고 짐이 무거웠는가 아니면 전까지 괜찮았지만 다시 고소증상이 오는지 걸음이 무거워 진다.








사진 설명
매킨리 씨티로 들어 가기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도중..
이때부터 다시 약간의 고소증상으로 지치기 시작 했음.
전면에 보이는 벽이 헤드월 이고 그 아래 부분의 평원 지대가 camp4
이다.



안자일렌 상태라 모두들 힘에 겨워도 천천히 한걸음씩 옮겨 가는데 긴언덕을 하나 넘고 나니 드디어
camp4의 넒은 눈 평원이 펼쳐지고 형형 색색의 텐트들이 수십동이 쳐있는 텐트촌으로 우리는 썰매와 함께 도착했다.


매킨리 씨티로의 입성






역시 이곳을 매킨리 씨티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만 하다. 거의 하나의 마을처럼 보이는 텐트 촌이다.

이곳에서 다시 여러 개의 등반 루트로 갈라 지기 때문에 이 많은 등반가들이 이곳에 전진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는
것이다.



camp4 도착
기념사진


이곳에는 레인져의 캠프가 상주 해 있고 메디컬 캠프도 있으며 지상과의 연락도 용이
한곳이다.







레인져 캠프와 메디컬
캠프


우리는 캠프지 초입 부분에 넓은 사이트를 발견하고 이곳에 camp를 설치하고 팀의 깃발을
꽂았다.
국현형은 모두에게 매킨리씨티 입성을 환영한다란 말로 우리의 등반을 자축해줬다.


도착하면서 캠프를 칠 때까지 별로 상태가 좋지 않은 나는 천천히 주위도 둘러보고 이곳의 대기에
적응하려 애 섰지만 하루에 고도 1000m를 올라온 것은 역시 힘이 들었다.



캠프지 전면에 데날리의 남봉이 보이고 그아래로 우리가 올라야 할 헤드월이라는 거대한 벽이 무시무시하게
버티고 있었다.
표고차 800m의 이 거대한 벽을 바라보니 아예 기가 죽어 버렸지만 그 벽에 조그만 점들처럼 오르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다시금 열의가 불태우지기도 한다.







CAMP5에서 레스큐걸리로 하강 하는
스노우보더- 자세히 보면 우측의 점들이 camp4이다.


캠프를 설치하고 얼마 안되서 갑자기 캠프촌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무슨 소린가 처다 보니 누가
헤드월 상단에서 스노우보드로 활강을 하는 것이다.
충격이다 남은 힘들 게 기어 오르는 곳을 단숨에 내려 오다니 하지만 내려 오는 속도는
멀리서 보기에도 무시무시해 보였다.
또 한번 환호성이 나더니 이번에는 스키어가 활강을 하고 또 한번은 중단에서 스노우보더가 굴러
내렸다.
이 고소지에서 스노우보드를 타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지만 이렇게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니 참 대단하다. 무슨 축제의 모임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곳 캠프지에는 모두 사막의 쥐처럼 해가 좋으면 볕을 쬐듯이 텐트 밖으로 나와서 날씨를 관찰하거나
모두들 어슬렁거렸다. 이 모두 고소지에서의 행동이다. 저절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또 한번 휘파람이 불려 지더니 이번엔 헤드월 중단에서 누가 글리세이딩을 하는 것이다. 국현형이
저렇게 하는 사람은 한국사람밖에 없을 거야 외국애들은 저렇게 글리세이딩 못하거든..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한국팀이었다.


모두 모인 뒤 저녁을 해 먹고는 먼저 올라온 한국팀을 찾으니 우리 캠프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승권
선배의 팀camp가 있었다.팀의 2기 선배이신 철준형과 동기 뻘인 경호선배와 청악산악회의 철한 이라는 후배가 있었다.
하이 캠프를 설치
해놓고 있다가 고소적응과 등반 식량과 연료 보급을 위해 일부대원은 정승권 선배와 하이 캠프에 있고 두사람은 내려온 것이다.반갑게 맞이하고 차를
나누며 환담을 하다가 돌아 갔다. 한국팀을 만나 정보를 얻으니 정말 든든했다.
이렇게 하루를 마감 짖고 매킨리씨티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곳의 날씨는 밤 9시가 넘으면 무섭도록 추워진다.]


밤에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잠을 잤지만 다음날 아침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


자면서 모자를 쓰고 머리를 보온하면서 자야 됬는데 답답했는지 잠결에 벗어 버리고 머리를 침낭 밖으로 내어 놓고 잔 것이다.


당장 두통과 함께 무기력증이 들었다.아침을 하면서 눈을 녹여 물을 만들려고 눈을 담아 오는데 내가 생각해도 슬로우비디오 처럼 움직여졌다. 이곳에 온 첫날의 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나처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스운 표현이라면 공포영화에서의 좀비족 처럼 어슬렁 거리면서 걸을 수밖에 없다.


겨우 아침을 먹고 아무 소리 못하고 뻗어 버렸다.
내가 정신을 못차리자 이번엔 국현형이 후배들을 데리고 데포 시킨 짐을 찾으러 내려 가셨다.






팀원들이 내려간지 한두 시간 뒤 정신이 들었다.
한숨을 더 자고 나니 개운해졌다. 약을 찾아
아스피린을 하나 먹고 나서는 텐트지를 정리하고 물을 끓여서 놓고 있다 보니까 팀원들이 돌아 왔다.정신 못차리는 나를 위해 수고를 한 팀원들이
고마워진다.



cam4오른쪽으로 보이는 웨스트립 코스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다시 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는 맑은 정신으로 일어 나야만 된다는 일념으로 잠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매킨리 씨티에서의 생활은 며칠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등반 기간 중 가장 기억에 생생하고 또
즐거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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