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토 샤봇 [Reenato Chabod]

2002.12.18 14:40

시샤 조회 수:1429

레나토 샤봇(Reenato Chabod, 1909∼1990)

1930년대에 활약하던 레나토 샤봇은 특히 킬리오네, 브카라테, 그리벨, 제르바슈띠 등 명인의 파트너였다. 1929년에 몽모디 남동벽 초등, 1933년에 에규 디 블랑쉬 드 퓨트리 북벽 초등, 1934년에 몽블랑 뒤 따귈 제르바슈띠 쿨르와르 등반, 그랑파라디소의 몽에메리우스 북벽(1935년)을 등반하는 등 다수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 가운데 1935년 마이어와 페테즈가 초등한 그랑드죠라스 북벽 중앙 측릉을 재등한 기록을 잊을 수 없으며 고산 등반으로는 1934년 안데스의 아콩카구아 이탈리아인 초등을 들 수 있다. 또 같은 해 세르 오르고네스(5462m, 쿠에르노스)를 초등정하기도 하였다. 그의 본업은 법률가로 몽블랑과 그랑파라디소의 가이드북을 펴내기도 하였다. 1930년에 이탈리아 산악회 회원이 된 이래 1975년에서 1979년까지 회장을 역임했으며 1953년에서 1971년까지는 CAI의 부회장과 회장을 역임하였다.

몽블랑 캠페인 시 샤봇을 처음 만났다고 적고 있는 제르바슈띠의 자서전에서 그는 "보칼라테와 샤봇 일행은 나보다 일주일 먼저 와 있었다. 그레퐁 동벽을 올랐던 그들은 주변의 일기가 불순해지자 에규 베르트 횡단을 준비하면서 머메리 쿨르와르에서 윔퍼 쿨르와르로 하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샤봇 일행은 제르바슈띠에게 산 아래에서 거들먹거리지 말고 그들과 합류하기를 권유했던 것이다.
제르바슈띠는 샤봇의 인성을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일행은 한 동안 쉴 수 있게 되어 대단히 흡족해 했다. 머메리 쿨르와르를 오르며 쿨르와르 상단 암벽 지대를 올라서는 좀 편 편해진 눈둔덕을 찾아 휴식하게 된 것이다. 샤봇은 주위의 봉우리 여기 저기를 둘러보며 아침 햇살을 온 몸에 받으며 목가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어 있었다."

1934년 여름, 당대 프랑스의 명 가이드 아르망 샤를레와 그레로 일행이 그랑드죠라스를 시등한다는 소식을 샤봇이 알아내자 제르바슈띠와 팀을 짜 7월말 샤를레 일행에 이어, 낙석 이 쏟아지는 가운데 첫 번째 암탑에 있는 작은 콜에 이르자 샤를레가 허겁지겁 하강하는 것을 목격했다. 샤봇과 함께 로프를 매고 있던 제르바슈띠는 '거긴 완전히 얼음판이다. 별 수가 없어.'라고 불평을 털어놓으며 사면을 내려갔다. 우리 일행은 두 번째 암탑에 올라 간단히 요기를 나누고 상단부 두 명의 독일인 페테즈와 하링거 일행 쪽을 관찰했다.
샤봇은 서부 알프스, 즉 얼음과 바위 그리고 절벽의 등반 조건에 낯익어 있는 클라이머라고 일컬었다. 그 해 그랑드 죠라스에서 앞서 가던 독일인을 뒤로 하고 철수했던 결정은 극히 정확한 판단이었다. 페테즈와 하링거 일행은 결국 폭풍설을 만나 하강 도중 하링거가 추락하여 사망하는 종국을 맞았던 것이다.

제르바슈띠와 대등한 등반 기량을 지녔던 샤봇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1935년 말에 이룬 그랑드 죠라스 2등의 기록일 것이다. 페테즈와 마이어 일행이 윔퍼 스퍼로 초등한 이틀 후 샤봇은 제르바슈띠와 팀을 이루어 등반하려고 하였는데, 스위스인 레이몽과 루루블라(여성 클라이머) 일행과 우연히 만나 할 수 없이 네 명의 팀으로 그랑드 죠라스 2등을 거머쥔 것이다.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알피니스트로서 두 가지의 세계를 정진한 샤봇의 경우 제르바슈띠와 함께 193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지성의 클라이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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