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부크레예프 [Anatoli Boukreev]

2002.12.18 16:13

시샤 조회 수:2276

아나톨리 부크레예프(Anatoli Boukreev, 1958∼1997)

러시아의 세계적인 산악인 아나톨리 브크레예프가 1997년 12월 25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눈사태로 사망했다. 그는 동료인 시몬 모로(Simone Moro)와 촬영기사인 디미트리 소베레프와 함께 해발 6,000미터 지점에서 고정로프 작업을 하던 중 상단에서 갑자기 발생한 눈사태에 휩쓸렸다. 눈사태가 끝난 곳은 캠프1 위 100미터 지점으로 모로는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왔지만 아나톨리와 소베레프는 실종되고 말았다.

의료진의 보호 아래 베이스캠프로 귀환한 모로는 즉시 카트만두로 후송되었다. 곧이어 아나톨리의 절친한 친구인 린다 윌리와 셀파들이 헬기를 이용,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끝내 그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나톨리는 고산의 위험에 대해 철저히 대비했던 산악인으로 산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아무리 눈사태가 심각해도 아나톨리만은 눈을 파헤치고 나와 나타날 것으로 믿을 정도였다.
그는 최근 2년 동안 소규모 등반대와 함께 동계 시즌에 어려운 8,000미터급 봉우리에 새 루트를 개척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이 말했듯 "무언가를 오르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왔었다. 그는 세계의 산을 두루 섭렵하고자 가이드나 보조자로 등반대에 합류해 왔다.

58년 우랄 산맥에서 태어난 그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대학시절 여름방학만 되면 천산 지역의 고소캠프에서 등산과 스키로 단련해 왔다. 졸업 후에는 군복무를 마치고 엘리트 산악캠프에서도 훈련을 쌓았고, 카자흐스탄에서 노르딕스키 코치생활에 이어 구 소련 등산 코치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히말라야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89년 소련 캉첸중가 정상 트래버스 원정대에 참가했고, 7,000미터 이상 봉우리를 30 차례 이상 등정했다. 그의 등정을 살펴보면 단 한 차례만 후퇴했던 기록이 있다. 포베다봉 동계 시즌에 계속해서 불어닥친 강풍으로 후퇴한 것이 전부다. 그 이후로 그는 8,000미터 급 봉우리를 11개 등정했고, 그 가운데 몇몇 봉우리는 2∼3회 이상 등정하기도 했다.

아나톨리가 8천 미터 등반대에 합류했다가 정상에 서지 못한 경우가 한번 있었는데, 당시 그 원정대는 악천후 때문에 베이스캠프 밖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8천 미터 급 봉우리를 총 21회 등정했고, 그 가운데 4회는 97년 한해에 이룩한 것으로 80일만에 해냈다. 인도네시아 에베레스트팀을 도와 정상 등정에 성공시킨 뒤 로체봉을 오르고, 브로드피크와 가셔브럼 2봉을 등정한 것이다. 그러고도 그는 이어서 천산산맥의 고봉 2개를 가이드했다.
그를 아는 산악인들은 항상 기타를 손에 지닌 채 러시아 민요를 즐겨 부르던 모습과, 보드카에 취해 쏟아내던 풍부한 유머와 날카로운 직관 등을 기억하고 있다. 아나톨리는 가이드로 활약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봉우리의 입산을 허가받기 위해 타 원정대와 합동등반을 계획하고 그 원정대의 조력자로 합류하기도 했다.

그는 98년 여름엔 낭가파르밧을 오를 예정이었으며, 히말라야 클라이머들을 위한 고소훈련캠프를 지휘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애석하게도 1997년 12월 25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눈사태에 당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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