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날리-맥킨리 20,320 피트로의 여행 9.(데날리 원정기)

2002.12.18 12:59

박성민 조회 수:2021 추천:6

 

 

지금도 눈을 감으면 매킨리 씨티의 캠프지 에서의 생활이 영화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도착한 다음날은 다시 날씨가 나빠지고 또 고소 적응 차 하루 운행을 쉬면서 느긋이 매킨리 씨티의 예비일을 즐겼다.
이곳 매킨리 씨티에서의 재미있는 일은 매일 오전에 이곳 camp지가 마치 조그만 장터처럼 변한다는 것이다.
아침에 모든 등반을 끝내고 하산하는 팀들이 그동안 남은 부식을 정리하면서 이곳 저곳 camp마다 다니며 뭐 필요한거 없냐? 우리 부식이 좀 남았는데 좀 받아라..등등
또 이곳에 인기 품목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휘발유와 담배이다.

헤비스모커들!!

휘발유는 어차피 등반 기일을 계산해서 팀당 LP에서 신청을 해서 받아 오기 때문에 모두들 연료가 빠듯 해서 휘발유를 들고 오는 팀은 환영이다.
우리팀은 이곳 camp지에서 해비스모커로 위명?을 떨쳤는데 외국 등반대에게 우리팀에 가면 담배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종종 부식을 들고 와서 우리와 담배를 바꾸기도 했다.
해발 4,300m의 벼룩 시장이라 생각만 해도 재미 있지 않은가!!

 

camp4에서 바라본 매킨리 남봉
사진 처럼 바람이 남쪽으로 불면서 매킨리의 남봉에 눈보라가 몰려오면 정상 부근은 걷잡을 수 없는 폭풍 속으로 휘몰아 치게 된다.
강력한 폭풍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

그래서 항상 camp4에서 바라다 보는 남봉의 기상상태로 등정 여부를 판단 하곤 한다.

어떤날은 한 외국인 여성 등반가가  썰매에 부식을 실고 다니면서 good food!! , best dinner 이라고 외치며 캠프를 지나면서 우리에게 뭐 필요없나 물었다.
종영이가 쏜살 같이 나가더니 이것 저것 들고 왔는데 대부분이 등반용 식량인데 마운틴 하우스와 기타등등의 몇가지의 동결 건조 식품이었다.
봉투에 쓰여 있는 글을 읽어 보면 산소공급에 도움을 주는..체력 보강에 만점등등 귀에 솔깃한 글로 무장 되어 있어 뜯어서 조리법 데로 끓여 먹어 보면 모두들 한 숟가락씩 들면 먹지를 않았다. 덕분에 종영이는 산소공급에 도움을 주는 식품을 먹어 치워야 했지만...

외국팀은 이동 중에 항상 우리 보다 준비가 빨랐다.

camp4 식사준비중

그의 대표적인 이유가 서로 다른 식생활인데 이들은 봉지에 담긴 인스턴트 음식이 모두들 한끼 식사로 해결을 하는 것이다.
모자라는 음식물 섭취는 대부분 행동식 특히 너트류 과자류등으로 해결하는 듯 싶었다.우리는 저 고도의 캠프지에서는 밥을 먹었고 높은 고도의 캠프에서는 알파미로된 밥을 먹었다.

 

이 알파미는 군용 소고기 비빔밥이었는데 3일 정도 먹으니 이 또한 먹기가 힘들었지만 그나마 압력밥솥으로 지어 먹어서 먹을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식사준비하는 시간이 다른 외국팀에 비해서 배는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그로 인해 등반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으나 등반 식량 문제는 역시 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외국 팀들이 많이 먹는 마운틴 하우스는 여러 가지 음식물로 되어 있는 건조 식품인데 더운물만 있으면 모두 1분 이내에 요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치즈가 다량으로 함유된 열량이 많은 음식이나 느끼하기 때문에 우리가 먹기엔 부담이 됬으나 평소 피자나 그와 비슷한 이태리 음식들을 많이 먹었다면 조금은 먹을만 하다. 이 음식은 장비점에서 구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역시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질 않는걸 어쩌랴!!

다른 팀들이 우리팀의 압력밥솥을 보면 거의 이걸 어떻게 지고 왔는가라고 놀라서 묻지만 먹는 즐거움을 위해서 조그만 무게쯤은 다들 감수 하는 표정을 짓는 우리팀이었다.

하기야 우리팀은 다량의 김치와(500g 20개) 100ml수통 가득 각종 젓갈류 등 무게가 많이 나가는 한국 식단 그대로 적용하여 식사를 해결했는데

우리가 올라온 다음날 우리 캠프의 남쪽에 어떤 사람이 눈을 막 파길래 데포시킨 물건을 찾는가 보다 했더니 이들은 레인져 들이었다.
그건 바로 화장실을 파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3면에 휘장을 친 그냥 그대로 자연 스러운 우리식 데로 뒷간이다.
그래서 이 화장실이 만들어진 이후로 우리 캠프 앞으로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이 많아 졌는데 고소증상이 설사로 오는 사람들이 좀비족 처럼 어슬렁 거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매킨리씨티의사람들..
매킨리남봉의 날씨를 보고 있다.
 

그리고 화장실을 갔다가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가 마당쇠란 별명을 지었줬던 스페인팀을 만났다.
이 친구 화장실 갔다가 무리했는지 우리팀 캠프로 놀러 와선 코피를 흘리길래 따뜻한 차를 한잔 대접해서 보냈다.
우리 보다 일정을 빨리 해서 벌써 하이캠프를 설치하고 이틀 뒤면 정상 공격을 한다고 한다. 

 

서로간의 행운을 빌어 주며 자기팀 캠프로 돌아 갔는데 이 스페인팀은 여러 모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정이 가고 또 그간 우리팀도 등반 한적이 있는 레닌봉도 등정했다고 해서 더욱 정이 가는 친구들이었다.
또 나와 경비행기를 같이 탔던 친구들인 스위스의 이인조도 만났는데 이 친구들은 레스너꿀르와르를 등반하고 스키로 하강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됬느냐고 물었더니 레스너꿀르와르가 눈이 심하게 크러스트되어 포기하고 우리가 어제 보았던 레스큐걸리에서 스키하강을 했다는 것이다.
이 친구들은 거의 휴가를 즐기는 기분으로 등반을 하는지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친구도 사귀고 헤드월을 올랐다가 바로 스키로 하강하는 엽기적 등반을 계속 하는 것 같았다. 나이도 21살정도밖에 안먹은 친구들이었는데 그들의 자유스러움이 나는 너무 부러웠다.
어린 나이지만 벌써부터 산을 즐겁게 대하는 태도가...
나는 산을 즐겁게 다니기 시작한게 불과 몇 년이 되질 않아서였을까....

이곳에서 본 특이한 사람 중에 레인져 캠프에 스텝으로 보이는 노인네?들이었는데 내가 봐도 환갑은 넘어 보이는데 빛바랜 고어텍스 원피스를 입고 여유있게 등반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 캠프 앞을 지나며 우리 팀의 깃발을 보면서 팀의 깃발이냐며 묻고는 멋지다를 연발하며 가더니 우리가 해 먹던 저녁의 칠면조햄 굽던 냄새를 좋은 냄새가 난다며 웃으며 지나가던 그의 얼굴에서 오랫동안 산에서 겪은 인자함이 보였다. 나도 저렇게 늙을 수 있을라나...

위쪽은 하이캠프에서 찍은 포레이커이고 아래쪽은 매킨리 씨티에서 찍은 포레이커

특히 포레이커는 밤에 보면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연출해낸다.

그리고 이곳에서 본 포레이커는 정말 아름다웠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그곳에서 구름 속에 떠있는 포레이커 봉의 광경이 정말 잊혀지지 않았다. 오기 전에 김홍빈 선배가 '매킨리는 아름답다' 라는 말을 하셨는데 아마 이 포레이커를 두고 한말인 것 같았다.

드디어 6월1일 우리는 저 거대한 헤드월을 향해 출발을 했다. 등반 일정은 헤드월을 올라 16릿지를 거쳐 매킨리빌리지라 불리우는 camp5를 구축하고 다시 camp로 내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고소적응을 하고 정상공격에 대비를 하기 위함이다.
12시경 헤드월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발걸음은 절대 무겁지 않았다.

등반준비 하는 모습

아래부분 경사도40도 그리고 2/3지점 부터는 경사가 70도를 넘어 고정로프가 설치되어있는 헤드월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향해 나갔다. 
헤드월 중간 정도 까지는 40~50정도의 경사라 지그재그로 등반을 하며 서로의 몸에 안자일렌을 하고 천천히 올라갔다.

 

운행목적은 정상공격시 필요한 부식과 장비를 데포 시켜놓고 그리고 미리 텐트를 camp5에 설치를 하고 나서 다시 camp4로 하산 하는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전일의 camp3에서 camp4로 이동시에도 마찬가지로 하루 짐을 데포를 시킨 다음 어느 정도 고소에 익숙한 상태에서 그 고소를 우리몸이 적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드월을 오르는 도중

그리고 camp4는 해발 4300m정도의 고도이고 camp5는 해발 5300m 정도이므로 거의 표고차가 1000m가 나기 때문에 하루에 고도를 1000m를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고소적응이 힘들기 때문에 그 고소지에서 잠깐 머물고 다시 저 고도로 하산을 하여 안정을 찾고 나서 다시 그 지점을 오르는게 가장 적합한 고소적응 방법이라 한다.

실제로도 내가 처음 윈디코너를 올라온 날은 극심한 두통으로 고소가 왔으나 두 번째로 올랐을 때는 전보다 두통이 현저히 감소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요사이는 이 고소적응 프로그램?에 의해 상업등반대가 전문등반가가 아니더라도 정상까지 등반을 안내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뛰어난 등반가들은 어느 정도 고소에 적응된 상태에서 감행하는 극한등반으로 이틀만에 고도 4000m정도를 등반하는 괴력을 발휘 하기도 한다.

 

두시간 반정도 진행을 하니 점점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중간을 조금 넘어선 자리에 크레바스로 보이는 바위가 턱을 이루는 테라스가 있었다.

모두들 이곳에서 휴식을 하면서 다음의 코스인 헤드월의 고정 로프 지대를 오르게 된다.
이미 많은 등반대들이 이곳 테라스에 있는데 모두들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헤드월을 오르면서 본 camp4

우리는 이곳에서 미국인으로 보이는 등반대들과 잡담도 하고 간식도 나누어 먹고 각기의 등반대들의 차례를 기다리다 테라스 좌측으로 이동하면서 고정 로프에 주마를 걸고 한손은 피켈로 설벽을 찍고 한손은 고정로프의 주마로 주마링을 하면서 조금씩 올랐다.
이곳은 이미 매킨리 씨티 보다 약 4~500m이상 고도를 올린 곳이므로 이곳부터 주마링을 하면서 호흡이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걸어서 올라오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으나 약간의 등반 기술을 적용 하자 벌써부터 한 걸음 한걸음이 쉽게 올라서지지가 않았다.

이곳에서 레인져 스텝인 먼저 말한 할아버지를 만났고 그리고 스위스 2인조를 만났다. 이 스위스 2인조는 이미 고소적응이 완벽하게 됬는지 고정로프를 버리고 각기 프론트포인팅을 구사하며 빠르게 올라가 버렸고 우리 바로 뒤의 레인져 할아버지는 한손은 품속에 넣고 한손으로 여유있게 주마링을 하면서 올라 오는 것이다.

총 6피치 이상되는 헤드월 상단의 고정 로프는 마지막 부근 전에서 거의 70도 이상의 각도를 보이며 우리의 스텝을 무척이나 힘들 게 했다.
한발 한발을 옮기는게 무척 힘이 들면서 갈증이 굉장히 많이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등반하면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을 등반 하는게 역력했다. 그러나 이정도의 경사라면 역시 설악산이라도 힘들 터 인데 이곳은 산소마저 희박해서 호흡도 거의 한걸 음에 한 호흡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마지막 피치를 젖먹던 힘을 다해서 올라 서니까 우리가 오른 길이 그제서야 보인다.
눈으로 보이는 표고차 800m는 내가 과연 이곳을 올랐는가 싶을 정도로 저 아래 camp4가 조그만 점으로밖에 보이지가 않는다.

헤드월의 고정 로프

헤드월 정상에서 본 camp4

다리에 힘이 풀려 마지막 피치를 넘은 후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이곳에 오르자 우리 뒤에 오르던 레인져 할아버지는 데포지를 파더니 지쳐 보이는 우리가 기특했는지?우리에게 육포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양반은 여유 있게 하강을 해버렸다.
이부근 부터는 암릉이 섞인 능선이다. 앞을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능선이 있어 저걸 어떻게 가나 하면서 걱정을 스럽게 출발을 했다.
그래도 우리는 간다!!

헤드월 상단에 휴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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