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2)

2012.11.23 06:28

조윤성 조회 수:1597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2)

천등산 어느 등반가의 꿈 / 클라이머의 가슴에는 뜨거운 꿈이 있다

비늘구름이 촘촘히 박힌 하늘과 클라이머, 그리고 바위가 어우러져 마치 예술작품과도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어느 등반가의 꿈 리지의 크럭스 구간인 여섯째 마디를 선등하는 클라이머.

참 이름도 멋지게 잘 지었다.

어느 등반가의 꿈. 얼마나 멋진 꿈을 가졌길래 대둔산에 주눅 들지 않고 포말이 부서지며 유유히 흐르는 괴목동천을 굽어보며 아찔한 모습으로 서 있을까?

정말 꿈이 있었다. 그 꿈은 인도 히말라야의 탈레이사가르(6,904m)라고 한다. 이름도 낯선 탈레이사가르는 또 어떤 산인가? 탈레이사가르.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의 강고트리 지역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해발 6,904미터라면 네팔 에베레스트 지역의 아름다운 봉우리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6,815m)과 비슷한 고도의 산이다. 아마다블람 첫 등정은 1961년 3월13일 마이크 길, 배리 비샵, 마이크 워드, 발리 로마니스가 남서 릿지를 통해 20일 동안의 등반을 마치며 이루어낸 성과였다.

탈레이사가르는 어떤가? 이름도 고약하다. ‘악마의 붉은 성벽’이라는 뜻이란다. 이 무시무시한 산은 아주 오랜 기간 인간의 접근을 거부했다.

1997년 호주 뉴질랜드 합동대가 북벽으로 초등을 이루어냈고 1999년에는 러시아팀이 두번째로 올랐다. 우리나라는 2006년 9월9일 구은수, 유상범 대원이 북벽을 통해서 초등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탈레이사가르 등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93년에 첫 도전이 시작된 이래 10개 팀이 모두 실패했던 것이다. 특히 1998년도에는 난코스인 블랙 피라미드 구간을 통과한 우리나라의 산악인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 사람의 이름은 김형진, 최승철, 신상민 대원이다.

‘어느 등반가의 꿈’ 리지를 이야기 하다가 왜 멀고 먼 인도 히말라야까지 에둘러 돌아가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바로 이 리지가 대전클라이머동호회 회장 한상훈씨가 2002년 4월,
인도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중 숨진 대전출신의 클라이머 고 신상만씨를 기리고 자신의 등반에 대한 열정을 담는다는 의미에서 이름 지은 것이 바로 '어느 등반가의 꿈'이기 때문이다.

넷째마디부터 본격적인 등반의 시작이다. 난이도는 슬링을 잡지 않았을 때 5.10c. 두번째로 어려운 구간.

서울을 출발하여 추부IC를 지나 대둔산 등반 들머리를 지나면 좌측에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바로 장비를 착용하고 배낭을 울러 메면 다음에는 신발을 벗고 괴목동천을 건너야 한다. 10여 미터나 될까? 괴목동천은 도로변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고 깨끗하다. 물길은 유유히 흐르다가 크고 작은 바위를 부딪쳐가며 작은 포말을 이루며 내려간다.

10분이나 올라갔을까? 동굴로 가는 길 중간에 고정자일로 철다리가 메어져 있는데 여기가 오가는 등산객들로 약간 번거롭기는 하지만 첫째 마디가 시작되는 구간이다. 암벽화의 끈을 매고 바위에 올라붙으면 작은 오버행과 만나는데 여의치 않으면 바위 오른쪽에 바짝 붙어 자란 나무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러나 오버행을 넘으면 그뿐 초보자도 쉽게 15미터 길이의 첫째 마디를 완료할 수 있다.(난이도 5.9) 둘째 마디는 20미터 길이의 크랙 구간(난이도 5.8). 하긴 지방의 산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곳에도 인수봉이나 선인봉에서 쉽게 만나는 슬랩이나 발란스 구간은 없다. 평이한 크랙길을 따라 약 30미터를 더 올라가면 셋째 마디의 시작구간이다.

셋째 마디까지 워낙 수월하게 올라 넷째 마디가 기대된다. 슬링줄을 잡지 않았을 때 5.10c의 난이도가 나오는 약 30미터의 크랙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림도 아주 멋지다. 촛대봉처럼 뾰족 솟은 암벽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 등반가의 꿈이 내 마음 속에 새겨질 듯하다.

수직벽이지만 홀드가 잘 되어 있다. 넷째 마디 첫 구간을 형성하고 있는 암벽은 그리 높지 않지만 고도감이 만만치 않아 등반의 맛이 살아난다. 등반 포인트는 커다란 암벽의 우측 홀드를 잘 살펴 올라가는 것이다. 암벽의 좌측으로 오를 수도 있다. 선택은 역시 등반자의 몫이다. 넷째 마디를 마치면 다섯째 마디는 평이한 15미터의 크랙구간이다.

‘어느 등반가의 꿈’. 만만치 않은 중급 코스라 들었는데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는 것일까? 등반 중 내려다보이는 괴목동천과 맞은편에 우람하게 서있는 대둔산의 모습이 멋지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가 많이 부족하다.

벌써 여섯 마디의 초입에 서있다. 여섯째 마디. 슬링줄을 잡지 않았을 때 5.11a의 크럭스 구간. 출발은 수월하지만 거의 수직으로 보이는 직벽 가운데쯤을 지나게 되면 고도감에 저릿해지면서 홀드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이때 만나게 되는 유혹. 바로 슬링줄이다.

여섯째 마디 크럭스 구간에는 모두 세 개의 슬링이 걸려 있다. 물론 슬링줄을 잡고도 오르기가 만만치만은 않다. 선등 대장은 물론 슬링줄을 잡지 않고 자유등반을 했고 이곳을 두 번째로 찾는다는 바로 앞 등반자 역시 슬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여섯째 마디 등반을 마쳤다. 슬링줄의 없이 등반하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구간이지만 어렵게 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가슴 후련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괴목동천의 맑고 시원한 물은 등반으로 흘린 땀을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등반을 마친 클라이머가 환호하고 있다.

짜릿함을 느끼며 여섯 마디 등반을 마치면 약 20미터의 도보구간이 나오는데 이 구간을 일곱째 마디로 부르기도 한다. 하강 포인트는 아주 넓어서 십 여 명이 앉아 식사를 할 수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씨름을 하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

이 지점에서 천등산 정상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는 하나 등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하강을 하게 된다. 25미터, 30미터 다시 25미터의 하강을 하게 되면 괴목동천으로 이어지는 10여분 거리의 짧은 등산로와 다시 만난다. 하강 길이는 짧지만 중간에 나무 뿌리가 많아 자일과 쉽게 얽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괴목동천에 발을 담그고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신상만씨와 한상훈 씨는 과연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사실 산쟁이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씩 산을 품고 산다. 그 산은 신상만 씨의 경우처럼 탈레이사가르일 수도 있고 앞서 나온 아마다블람일 수도 있으며 에베레스트일수도, K2일 수도, 안나푸르나일수도 있겠다. 아무도 모르는 산 하나 내 가슴 속에 품는 것, 두근거리고 신나기도 하지만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든든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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