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도 레이 [Guido Rey]

2002.12.18 14:02

시샤 조회 수:1074

귀도 레이(Guido Rey, 1861∼1935)

이탈리아 튜린에서 1861년 10월 20일 출생한 그는 빗트리오 셀라의 가족과 인척관계를 맺고 이탈리아 산악회 태동과 이탈리아 공화국이 빅토르 엠마뉴엘 왕의 통치하에 연합체로서 이루어지는데, 큰 공헌을 한 인맥을 지니고 있다.
피오리오, 랏티, 보키레노와 함께 가이드레스 등반의 선두에 나섰던 그는 치마마렐라 남측
초등, 리스캄 남릉, 에규다르베즈, 몬테비조를 초등했다. 동생이 콜 데 제앙에서 사고로 사망하자 레이는 카스타네거와 마퀴나즈가모 출신의 사람들처럼 최고급의 가이드를 고용하여 격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요 봉우리의 초등을 이루지 못한 그는 당데랑 동릉상 포인트블랑슈 초등과 콜레레페티(마쿠나갸 측)를 횡단하는 등 다양한 결실을 맺기도 했다.
윔퍼를 선생으로 모셨던 레이는 영어와 라틴어 모두 능통해서 산악문학에 나름대로의 경지를 쌓고 있어 윔퍼, 레슬리 스티븐의 저서에 대단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1890년, 생애 최대의 과제였던 이 과제를 위해 그는 발쿠루낭쉬의 가이드를 모두 모아 1899년 2차 시등에 나섰다. 그의 아이디어란 반대측에서 올라간 가이드들이 로프를 내리면 그걸 잡고 올라가겠다는 것이었다. 레이는 마지막 오버행에서 바둥거렸으나 결국 돌파하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나흘 뒤 그는 가이드들과 다시 이태리 측 능선으로 올라가 철봉을 바위틈에 걸고 푸르겐 측으로 하산하여 오버행 아래에 이르러 줄사다리를 걸어놓고 다시 올라갔다. 이 푸르겐릉의 정상적인 등반은 1911년에 완등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1904년의 "마터호른" 1914년의 "Alpinism Acrobatico"가 있으며, 산악철학가이기도 했던 그는 "We go to the mountains to live and not to die"라는 명언을 남겼고, 곡예적인 등반활동만이 단순히 등산의 모든 것으로만 여기는 것에 대해 신중한 경고를 던지기도 했다. "There is in mountaineering something more than vain ambition to climb difficult peaks, there is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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